그림에세이. 그림이야기

'밤 골목 이야기' 초대전을 마치고

칡뫼 2016. 11. 27. 15:14









    

       전시회를 마치면 마음이 허전하고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네요. 왜냐하면 하고픈 이야기가 차고 넘쳐 작업에 몰입하던 중 전시회 날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다가 심부름 때문에 책갈피를 접어놓은 아이 같다고나 할까요.

      작품을 해 오면서 그림이 뭘까, 무엇을 그릴까. 한 없이 묻고 반문했었죠. 수많은 사조와 철학, 시대의 변화에 따른 앞선 사고가 미술을 선도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작가의 이야기였죠. 오랜 고민 끝에 나름 정한 논리가 있었습니다.

     '겪어 잘 알고 있는 것을 그리자.''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그림을 그리자.' '그림 속에 사람 이야기를 담자.' 등 이었죠. 보여 지는 그림은 보는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소통을 통해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감동 또한 소통의 자식일 뿐입니다. 그래서 만난 것이 밤 골목길입니다. 새벽출근에 늦게 일을 마치면 늘 눈앞에 펼쳐지던 광경, 저에게 가장 가깝고 친근한 풍경이었죠.

      골목은 도로와 달리 사람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발자국 소리도 들리고 고양이도 살죠. 눈물 자욱이 묻어 있고 한숨 소리도 배어있습니다. 휴지가 날리는가 하면 전봇대나 벽에 구인, 구직광고가 찰거머리마냥 붙어있기도 합니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장사꾼 목소리도 들리는 곳이죠. 그런가 하면 연인들이 살짝 숨어 입맞춤하기 좋은 곳 또한 골목입니다.

     밤은 낯보다 허전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을 마친 낡은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서 있기도 하고 눈을 부릅뜬 자동차도 보입니다. 전봇대, 가로등불, 쓰레기통과 맨홀 뚜껑, 검푸른 하늘을 이리저리 가르며 지나는 전선이 머리 위에 있습니다. 주차금지 팻말이 있는가 하면 CCTV 카메라도 달려있죠.

     그런 밤 골목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장인, 학생, 오토바이로 음식을 나르는 사람, 그리고 파지 줍는 노인 등. 가로등불이 비추는 길을 따라 보이는 만큼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입니다. 삶이 퍽퍽할수록  평온한 안식이 그립습니다. 밤 골목길을 걷는 나그네 모습에서 삶을 봅니다. 

    걸음이 멈추는 곳은 어디일까요. 마음이 편안한 집이겠지요. 아니면 자그만 방일 수도 있고요. 편안한 휴식 뒤에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존재 우리들입니다. 반복되는 삶이죠. 우린 어쩜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를 향해 마냥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개인전은 이정표입니다. 이 길이 맞는지 저 길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갈 길을 가르쳐 주죠. 이번 전시는 고맙게도 저에게 또 다른 골목길을 발견하게 해 줬습니다. 저기 골목길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네요. 다시 붓을 잡습니다.

                                           

-제 전시에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 칡뫼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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