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작품

안중근

칡뫼 2019. 2. 6. 12:46


3.1 만세운동 100주년이 다가오네요.


안중근

187992일 탄생

1895년 토마스(도마)라는 세레명 받음 

1904년 러일전쟁, 해외망명.

1905년 을사늑약, 독립사상 고취를 위해 입국

1906년 진남포 석탄상회를 정리 삼흥학교설립 돈의학교 인수, 국채보상운동 참여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강제 퇴위, 한일신협약 체결되자 다시 북간도로 망명

독립전쟁 준비. 의병 300여명 모아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 활약.

1908년 아령지구 사령관으로 12차 일본군, 정찰대 수비대 격파. 그 뒤 35000여명 적과 회령전투를 벌였으나 패퇴, 블라디보스톡으로 탈출.

190912명의 동지와 단지회 결성. 안중근 엄인섭은 이토오히로부미. 김태훈은 이완용을 3년 내 제거하기로 맹세. 실패 시 자결하기로.

190910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오히로부미 사살. 이토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4발을 발사. 다시 이토가 아닐 것을 대비해 주위 일본인에게 3발을 발사. 처음 쏜 4발 가운데 3발은 이토, 1발은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도시히코[川上俊彦]의 오른팔을 관통하고. 이어서 쏜 3발은 비서관 모리타이지로[森泰二郞], 만주철도이사 다나카세이타로[田中淸太郞]를 맞혔다. 1발은 플랫폼에서 발견되었다. 의사 나이 당시 31

1910214일 여순감옥에서 순국, 822일 한일병탄조약

191931일 독립만세운동


1919년 만세운동은 그저 쉽게 생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드넓게 자존감이 살아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 됩니다

나라를 빼앗기는 절망의 세월 속에서 꺼져가는 민족의 자존감을 크게 되살린 분이 안중근 의사일 겁니다.

일본 패권주의 심장을 관통한  그날의 의거를 나름  형상화해  보았습니다.

 

 






    

 





도마 안중근           60X72cm        화선지수묵담채색    칡뫼김구

]



























'최근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트롱맨  (0) 2019.03.17
배설의 미학  (0) 2019.02.25
교하단상(交河斷想) 오두산에서  (0) 2019.01.20
자화상  (0) 2018.12.16
자화상  (0) 2018.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