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얼마 전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놓고 화수분 논쟁이 한창이었다. 화수분은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샘 같은 항아리를 뜻한다. 화수분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의 멋진 그릇이다. 어원은 과거 중국 고대 황하의 물을 채워놓던 커다란 항아리 '하수분'이 변하여 된 말이라 한다. 하지만 나에게 화수분은 학창시절 입시공부로 설핏 읽었던 단편소설이 생각날 뿐이다. 전영택선생의 작품 <화수분>은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 그리고 그로인한 죽음이 떠오른다. 세세히 줄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오늘 일부러 찾아 다시 읽어보았다.
글에는 행랑채에 세 들어 사는 부부와 딸자식 둘, 네 식구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데 행랑아범이 화수분이다. 가족은 상상하기 힘든 가난에 치여 산다. 어느 날 큰 딸애를 잘 길러 시집 보내준다는 강화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맡기고 온 아내 이야기를 듣고 통곡하는 화수분이다. 내가 보기엔 그 울음 속에는 가난, 죄책감, 가장의 무게, 생명의 원초적 질문까지 품고 있다.
지게 품팔이로 힘들게 살던 화수분은 다쳐 농사일을 못하는 양평 형님의 추수를 도와 주러갔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이제나 저제나 쌀이라도 한줌 지고 오기를 기다리다 지쳐 살길이 막막한 부인은 막내 옥분이를 데리고 남편 있는 양평을 찾아 나선다. 알고 보니 화수분은 형님 댁에서 그간 몰아치기 일에 지쳐 앓아 누었다가 돌아오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행랑어멈은 집주인에게 양평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내밀고 편지를 부탁 했었다. 양평을 찾아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울 집주인이 대신 써 보낸 기별 편지를 받은 화수분, 아내를 되찾아 나왔다가 눈보라 치는 길가 소나무 아래에서 애를 안고 웅크린 채 얼어 죽어가던 부인을 만난다. 눈은 떴지만 말을 못하는 아내. 반갑고 서러웠지만 밤새 서로 부둥켜안고 말을 잊은 채 추운 날씨로 얼어 죽은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이튿날 아침에 나무장수가 지나다가,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깨인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갔다.'
소설 화수분은 1925년 작품인데 나라를 잃고 지내던 가난한 백성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화수분은 열심히 살았으나 가난했다. 지게 품팔이로는 식구들을 먹여 살 릴 수 없었다.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밀려난 삶인 것이다. 낙오자는 이렇게 사회구조로부터 만들어진다. 인간 의지와 무관한 것이다.
이 소설을 끌고 가는 화자는 가난의 진솔한 모습을 누구보다 깊이 직시했지만 객관적 시선으로 일관하며 독자의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일까. 이 부분에서 국가의 존재 이유가 떠오르는 것이다.
곳간에 쌓아 놓은 재물은 아껴 써야 한다. 하지만 재정은 어려운 때 쓰려고 아끼는 것이 아닌가. 지금 보다 더 어려운 재난 상황이 또 있을까. 어찌어찌하여 위기를 넘겼다 치자. 그 생채기는 극심한 양극화, 빈부격차로 귀결될 것이다.
가난을 말로만 아는 관료는 기재부가 화수분이냐고 강변한다. 그대들은 가난이 뭔지 진정 아는가. 소설 주인공 화수분의 마음을 이해하는가. 공무원들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화수분을 말할 것이 아니라 소설 <화수분>의 주인공 화수분을 말했어야 했다. 개인의 슬픔이 오롯이 개인의 것으로 자리매김 된다면 국가의 존재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재부가 관리하는 재산은 국민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국민을 위해 쓰려고 쌓아 놓은 재화다. 그것을 무제한 쓰자는 것이 아니다. 계획해서 쓰자고 해서 만든 것이 기획재정부 아닌가. 돈은 잘 써야한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견뎌봐야 한다고 생각 한다면 그대는 아직 여유 있는 사람이다. 논외의 존재다. 지금 이 나라가 제대로 먹여 살리는 것은 공무원들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나라가 되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부부는 얼어 죽고 사실 부인 뱃속에는 또 아기가 있었다. 큰 딸 귀동이를 강화로 보내고, 막내 옥분이는 나무장수가 걷어 살리는 사회라면 국가는 존재가치가 없다. 슬프지만 소설의 무대는 나라를 빼앗긴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권국가 대한민국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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