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김포에는 농사 지으시는 분들이 많다.
모든 농사를 하늘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저수지는 마르고 논바닥이 갈라지면
그와 함께 농민의 가슴도 타들어 갔다.
가난한 농촌 살림에는 가뭄도 늘 한몫을 했다.
올 봄에도 김포에는 비가 거의 안 왔다. 연일 건조주의보였다.
하지만 농사는 때를 놓칠 수 없는 법이다.
너도나도 연휴 내내 사래 긴 밭, 작은 밭, 텃밭에
오이며 호박 토마토 참외며 수박 그리고 고추를 심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수리시설도 잘 되어있고 집집마다 수도물도 들어와 있다.
하지만 때 맞춰 오는 비만큼 고마운 것이 없다
비 참 잘 온다.
비료 100포대 보다 훨씬 낫다.
이런 걸 단비라는 거다.
及時雨다
천하의 농사꾼이셨던 아버지가 작업실 옆 대문간에 서 계신다.
“아버지 비 참 잘 오네요.”
내 말에 물끄러미 무표정이시다.
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신다.
때를 기억 못하시니 이제 농사일도 놓치셨다.
오늘 내리는 비는 동네 산책길을 방해할 뿐이다.
하루에도 10여차례 막내가 하는 공장을 다녀오시는 것이 일과다.
그 옛날 타들어가던 논밭에 때맞춰 비라도 흠뻑 내릴 때면
물한방울이 아까워 바삐 삽을 들고 논이며 밭에 나가 계셨다.
어릴적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 또한 그랬다
온몸이 젖어도 저녁 밥상머리에서도
세상을 얻은 듯 그저 그냥 흐믓하게 웃으셨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