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스케치

급시우 及時雨

칡뫼 2020. 5. 9. 11:11



내 고향 김포에는 농사 지으시는 분들이 많다.

모든 농사를 하늘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저수지는 마르고 논바닥이 갈라지면

그와 함께  농민의 가슴도 타들어 갔다.

가난한 농촌 살림에는 가뭄도 늘 한몫을 했다.

 

올 봄에도 김포에는 비가 거의 안 왔다. 연일 건조주의보였다.

하지만 농사는 때를 놓칠 수 없는 법이다.

너도나도 연휴 내내 사래 긴 밭, 작은 밭, 텃밭에

오이며 호박 토마토 참외며 수박 그리고 고추를 심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수리시설도 잘 되어있고 집집마다 수도물도 들어와 있다.

하지만 때 맞춰 오는 비만큼 고마운 것이 없다


비 참 잘 온다.

비료 100포대 보다 훨씬 낫다.

이런 걸 단비라는 거다.

及時雨다

    

천하의 농사꾼이셨던 아버지가 작업실 옆 대문간에 서 계신다.

아버지 비 참 잘 오네요.”

내 말에 물끄러미 무표정이시다.

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신다.

때를 기억 못하시니 이제 농사일도 놓치셨다.

오늘 내리는 비는 동네 산책길을 방해할 뿐이다.

하루에도 10여차례 막내가 하는 공장을 다녀오시는 것이 일과다.

그 옛날 타들어가던 논밭에 때맞춰 비라도 흠뻑 내릴 때면

물한방울이 아까워 바삐 삽을 들고 논이며 밭에 나가 계셨다.

어릴적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 또한 그랬다

온몸이 젖어도 저녁 밥상머리에서도

세상을 얻은 듯 그저 그냥 흐믓하게 웃으셨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립다.

 

 



'삶의 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수분  (0) 2021.01.26
뻐꾸기 소리  (0) 2020.05.29
요즘 시국에  (0) 2019.08.26
초복에  (0) 2019.07.12
개인전을 치른지 1년이 지났다  (0) 2019.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