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수필

색계色界

칡뫼 2013. 12. 2. 21:28

 

                                                                                                

 색계 色界

                                                                                                                     

    겨울아침, 바람 한 점 없이 맵다. 마당 한쪽 장작더미 위에 앉은 곤줄박이 한 마리, "짹 재짹" 동료를 부르는 소리가 송곳처럼 허공을 찌른다. 꼬리를 위 아래로 까닥 까닥, 경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바지런한 몸짓, 마당을 오르락내리락 먹이를 줍는다. 뒤 따라온 또 한 마리, 치자색을 머금은 고동색이다. 할아버지 마고자의 호박단추 같다. 색이 날아다닌다. 아니, 색이 춤추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운동장 단상에선 교장선생님이 훈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나는 가슴에 달아준 리본색깔에 취해 있었다. 끝이 제비꼬리처럼 생긴 빨강, 파랑, 노랑 리본 들. 우린 색깔 따라 줄을 섰다. 나는 그날 친구보다 색을 먼저 사귀었다. 예쁜 색이 말을 걸어왔고 부를 때마다 신이 나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원색을 만난 그 설렘이란!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린다온몸으로 색을 느꼈던 첫날, 또래들과 구별된 날이기도 했다.

    크레용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건 조금 지나서였다. 여섯 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열두 가지 색 크레용을 받던 날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색마다 표정이 달랐다. 잠을 잘 때도 열두 가지 색 크레용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그날 꾼 내 꿈도 천연색이었으리라.

    서울에 전학 와서 처음 '에노그'라 불리는 그림물감을 만났다. '에노그'는 색이 병뚜껑 같은 것에 들어 있었는데, 야박해서 조금만 쓰면 깡통바닥이 드러났다. 물을 넣어야 색을 허락하는 물감은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붓을 조금만 덜 씻어도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았다. 색을 다루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색은 까다롭다. 외골수다. 자기와 조금만 다른 녀석을 만나면 즉시 표정이 변한다. 한번 변하면 돌아오지 않는다. 변심한 애인 같다.

    뒤란에 솥단지가 걸리고 장작불이 지펴졌다. 낼 모레면 정월이었다. 우물가 숫돌 곁에는 뾰족한 창칼이며 커다란 부엌칼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발목 묶인 까만 돼지 입에선 숨 쉴 때마다 허연 김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가끔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방안으로 쫓겨 들어온 나는 창호지 사이 쪽유리에 눈을 들이대고 밖을 살폈다. 돼지가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는가 싶을 때 우물가엔 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멱따는 소리는 사라졌지만 붉은 피는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붉은색은 나에게 공포가 되었다.

     엄마 몰래 얼레에 무명실을 감았다. 연을 날리러 밭둑을 내달았다. 용이, 창원이, 건택이 그 누구보다도 높이 멀리 날리고 싶었다. 연이 오르고 바람결에 얼레는 점점 빨리 돌아갔다. 하얀 연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점점 작아졌다. 춤추던 연도 높이 오르자 무서운지 몸이 굳어 한자리에 멈춰 섰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끝없이 푸른 하늘은 무섭기까지 했다. 그 한가운데 떠 있는 한 점 하얀 연은 슬퍼 보였다

    그 뒤 어른이 되어 어느 겨울, '감포' 앞바다에 섰을 때 동해의 푸르디푸른 바다 위를 나르던 흰 갈매기도 그랬다. 나에게 파랑과 하양은 그렇게 해서 두려움이자 외로움이 되었다.

      노랑을 만난 건 아플 때였다. 어릴 적 병치레가 잦았다. 어느 날 약에 취해 방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노란 경치가 거기 있었다. 하늘까지 노랗게 보이면 죽는 걸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 더 어지러웠다. 청년시절 미술관에서 만난 고흐도 노랑이었다. 해바라기. 밀짚모자. 들녘, 실내풍경. 밤하늘의 별까지. 그때 고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꿈틀거리는 노랑이 바로 나야'. 이른 봄 개나리가 노랗고 애기똥풀도 노랬다. 오뉴월 미나리아재비까지. 들녘의 노란 꽃은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 같다. 노랑은 현기증이다. 어쩜 사람이 죽을 때 보는 마지막 색이 노랑일지도 모른다.

      겨울 숲을 찾았다. 조금 오르니 박새가 나를 맞았다. 녹청색과 회색의 조화가 깔끔했다. 남에게 기대느라 셋방살이 하느라 속을 끓여서일까졸참나무를 타고 오른 청가시덩굴 열매가 새까맸다. 바삭바삭 낙엽이 말라있었다. 갈색이다. 이파리가 흙빛을 닮는 걸 보면 나무는 흙이 그리운 것인가. 더 오르니 길섶에 진한 주황색 열매를 단 노박덩굴도 보였다. 무채색의 겨울에 유채색을 만난다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흰 눈 속에서도 변함없는 푸른 소나무, 노간주나무, 노루발풀이 고마웠다. 내려오는 길빨간 백당나무 열매가 저녁 햇살에 영롱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고운 색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색은 삼원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달래는 분홍이다. 봄날 새순이 만드는 앞산의 연두색은 하루하루가 달라 황홀하기까지 하다. 깜직한 소녀의 눈웃음 같은 이른 아침 청보라색 나팔꽃, 가을에는 색깔의 향연이 열린다. 옻나무 단풍붉나무설탕단풍나무, 하얀 억새, 누런 갈대, 들판의 알곡들도 황금색이다. 모두 자기 자랑이 한창이다. 그런가 하면 스님의 잿빛 장삼은 눈 내리기 전 하늘빛을 닮았다. 색의 고민을 모두 담아 더 이상 검을 수 없어 보이는 신부님의 사제복도 있다. 사랑채 툇마루의 담갈색 나뭇결. 녹슨 양철지붕의 붉은 황갈색기와지붕의 옥색 이끼, 그리고 서해바다의 검은 회갈색 갯벌처럼 세월을 품은 색도 있다

   뽀얗다고나 할까. 따스하고 아련하고 쓸쓸하다 할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색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인다. 가슴에서 우러나 간절함이 녹아 배어든 색. 절절하면 할수록 깊어지는 색. 사랑, 그리움, 외로움조차 색이지 싶다.

    색계色界그렇다.  세상이 곧 색인 것이다.

 

                                                            2012년 에세이문학 가을호 초회추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