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박덩굴
11월 / 김형구
숲에 사는 새들은 안절부절못하였다
어제 내린 비로
그나마 조금이던 몸가리개 이파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열린 나뭇가지 사이로 들이닥친 차가운 햇볕은
빚쟁이 안방 차지하듯
숲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나무 그림자의 가늘고 긴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모든 것이 휑하니 드러나
체면이 속속들이 구겨지자
엄나무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앙칼진 가시를 돋아냈지만
산모퉁이 노박덩굴은 빨간 젖가슴 드러낸 채
벗겨진 눈물을 흘렸다
까만 불덩이 가득 싣고 온
연탄배달 '도라꾸'가 마을 입구 신작로에 자빠져
시끌벅적과 난리법석이 웅웅거리며
바싹 마른 숲을 깨웠다
어느새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까칠함이 서 있었다
숲에 사는 마음이 가난한 새들은
바지런을 촘촘히 두르고 털 깃을 바짝 세웠다
곧 차디찬 시련이 닥쳐올 것을
야박한 시계 없이도
벌써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