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읽기

[스크랩] 이유를 풀다/최연수

칡뫼 2015. 12. 25. 07:27

 

 

 

이유를 풀다

 

                              최연수

 

몸은,

 

수많은 기록이 내장된 블랙박스다

 

 

유난히 얼룩진 곳을 따라가면

 

한 가지 냄새를 흘리고

 

신발의 뒤축처럼 경사진 습관들이 있다

 

 

다알리아 반쪽을 비운 건 기울어진 바람, 사건과 정답은

 

기울어진 그곳에 있다

 

창밖의 나무들은 낡은 계절을 벗어놓는데

 

두 발에 걸음이 단단히 묶인 잠을 푸는 예민한 손끝

 

 

메스에 닿는 공기의 빛깔이 검붉다

 

 

한쪽으로 튄 비명과

 

스키드마크 또렷한 밤의 방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사인

 

미처 내뱉지 못한 혀 밑의 까끌까끌한 말과

 

움켜쥔 왼손의 분노와

 

부릅뜬 시선이 사건을 재구성한다

 

 

뒤늦게 수거된 파편, 혹은 숨겨둔 열쇠 같은

 

뜻밖의 지병은 구겨지지 않게 잘 펼쳐놓는다

 

 

그날을 모두 꺼내놓은 싸늘한 잠은 다시,

 

조용히 봉해질 것이다

 

 

* 2015 시와표현 12월호. 문장록, '2016 올해의 시' 70선 수록

 

 

   

출처 :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에세이문학
글쓴이 : 최장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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