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풀다
최연수
몸은,
수많은 기록이 내장된 블랙박스다
유난히 얼룩진 곳을 따라가면
한 가지 냄새를 흘리고
신발의 뒤축처럼 경사진 습관들이 있다
다알리아 반쪽을 비운 건 기울어진 바람, 사건과 정답은
기울어진 그곳에 있다
창밖의 나무들은 낡은 계절을 벗어놓는데
두 발에 걸음이 단단히 묶인 잠을 푸는 예민한 손끝
메스에 닿는 공기의 빛깔이 검붉다
한쪽으로 튄 비명과
스키드마크 또렷한 밤의 방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사인
미처 내뱉지 못한 혀 밑의 까끌까끌한 말과
움켜쥔 왼손의 분노와
부릅뜬 시선이 사건을 재구성한다
뒤늦게 수거된 파편, 혹은 숨겨둔 열쇠 같은
뜻밖의 지병은 구겨지지 않게 잘 펼쳐놓는다
그날을 모두 꺼내놓은 싸늘한 잠은 다시,
조용히 봉해질 것이다
* 2015 시와표현 12월호. 문장록, '2016 올해의 시' 70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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