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라는 말 속엔
김지헌
골목이라는 말은 얼마나 따뜻한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누군가 내다버린 연탄재처럼
다친 무릎에 빨간약 발라주던 무뚝뚝한
아버지처럼
골목이라는 말 속엔 기다림이 있다
벚나무 아래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둠이 먹물처럼 번지는 시각
생 무를 깎아먹는지
창밖으로 도란도란 들리는 목소리
골목이라는 말 속엔 아이들이 있다
너무 늙어버린 골목이지만
여전히 몽환 같은 밤을 낳아
여자들은 열심히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쑥쑥 커서
누군가의 애인이 되어 역사를 이어가는
골목의 불멸
사소한 것들이 모여 사랑이 이루어지듯
때론 박애주의자 같은 달빛이
뒷모습까지 알몸으로 보여 주는
절망과 희망이 번갈아 다녀가는 골목
—《시와 반시》2016년 봄호
그림 칡뫼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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