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생각

지허선사 ,지공선사

칡뫼 2018. 12. 2. 13:19





내 별명은 '지하철 허당'이다.

 멋지게 표현하면 지허선사이다. 지하철로 귀가할 때면 영락없이 정류장을 놓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주로 인사동 전시모임, 혹은 강연 기타 인적 모임인데 좋아하는 술이 늘 문제인 것이다.

환승역을 지나치는 것은 기본이요, 내릴 역을 한 두 정거장 지나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종점까지 갈 때도 많다.

다행히 집과 종점이 두 정거장 정도라 밤길을 터덜터덜 걸어온다.

별의별 각오를 해도 열에 여덟아홉은 그렇다

 

그건 그렇고 지하철이 없다면 어땠을까. 지하철은 참 편한 교통수단이다

예전에는 지하철 공사를 터널식이 아닌 복개식으로 진행했다

맨땅을 파헤쳐 양 옆에 파일을 박아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복공판을 깔아 찻길 만든다음 겨우 사람이 다닐 공간만 줬다.

상인들 영업지장에 차량정체는 일상이었다.

그 덕에 지금 서울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짧은 시간에 이루어 진 것이다.

늘 그렇지만 당시 지하철 공사장은 위험이 도사린 곳이었다.

커다란 기중기가 퍼 올리는 토사와 그것을 나르는 화물차, 철골구조물, 용접기계,

가림막과 표지판얽혀 있는 전선, 철망 등 복잡한 철공소 아니 야전 공장수준이었다.

거기에 늘 울리는 콤프레서 소음은 양념이었다.

 

20대초 사회 초년생 시절 모든 것이 불안했다직업, 학력, 계급, 재력 등

꿈 많던 청춘을 가로막는 사회구조에 수없이 좌절했던 나에게 당시 와닿은 그림 소재는 벽이었다.

벽그림을 몇 점 그렸던 차에

당시 지하철 공사장 모습은 내가 처한  세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벽이었다.

대상이 내 마음을 드러낸다 싶으니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주로 모필로 산수를 그리던 나에게 도시풍경은 상당히 큰 도전이었다.

큰 그림이었지만 전통 화구로도 얼마든지 사실적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때 그린 그림이 내 곁에서 그 시절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고 청춘은 힘들다.

지하철 공사장을 그렸던  화가는 어느새 35년 세월이 흘러

지공선사가 될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몸이 되었다

가난한 화가에게 지하철 공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사동 가려면 주로 종로3가에서 내리는데 그곳에는 지공선배들이 많다

선배들이여  지하철 공짜를 미안해 하지 마시라.

 그 옛날 복잡한 공사장 먼지, 소음 군말 없이 참아준 대가라 생각하시라

그나저나 세월은 정말 지하철만큼이나 빠르게 잘도 간다. 

 

 


















작업공간

145X112cm

화선지수묵채색

1982년 작




부분도






부분도




부분도



부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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