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은 '지하철 허당'이다.
좀 멋지게 표현하면 ‘지허선사’이다. 지하철로 귀가할 때면 영락없이 정류장을 놓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주로 인사동 전시모임, 혹은 강연 기타 인적 모임인데 좋아하는 술이 늘 문제인 것이다.
환승역을 지나치는 것은 기본이요, 내릴 역을 한 두 정거장 지나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종점까지 갈 때도 많다.
다행히 집과 종점이 두 정거장 정도라 밤길을 터덜터덜 걸어온다.
별의별 각오를 해도 열에 여덟아홉은 그렇다
그건 그렇고 지하철이 없다면 어땠을까. 지하철은 참 편한 교통수단이다
예전에는 지하철 공사를 터널식이 아닌 복개식으로 진행했다
맨땅을 파헤쳐 양 옆에 파일을 박아 벽을 만들고
그 위에 복공판을 깔아 찻길 만든다음 겨우 사람이 다닐 공간만 줬다.
상인들 영업지장에 차량정체는 일상이었다.
그 덕에 지금 서울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짧은 시간에 이루어 진 것이다.
늘 그렇지만 당시 지하철 공사장은 위험이 도사린 곳이었다.
커다란 기중기가 퍼 올리는 토사와 그것을 나르는 화물차, 철골구조물, 용접기계,
가림막과 표지판, 얽혀 있는 전선, 철망 등 복잡한 철공소 아니 야전 공장수준이었다.
거기에 늘 울리는 콤프레서 소음은 양념이었다.
20대초 사회 초년생 시절 모든 것이 불안했다. 직업, 학력, 계급, 재력 등
꿈 많던 청춘을 가로막는 사회구조에 수없이 좌절했던 나에게 당시 와닿은 그림 소재는 벽이었다.
벽그림을 몇 점 그렸던 차에
당시 지하철 공사장 모습은 내가 처한 세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벽이었다.
대상이 내 마음을 드러낸다 싶으니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주로 모필로 산수를 그리던 나에게 도시풍경은 상당히 큰 도전이었다.
큰 그림이었지만 전통 화구로도 얼마든지 사실적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때 그린 그림이 내 곁에서 그 시절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고 청춘은 힘들다.
지하철 공사장을 그렸던 화가는 어느새 35년 세월이 흘러
지공선사가 될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몸이 되었다
가난한 화가에게 지하철 공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사동 가려면 주로 종로3가에서 내리는데 그곳에는 지공선배들이 많다.
선배들이여 지하철 공짜를 미안해 하지 마시라.
그 옛날 복잡한 공사장 먼지, 소음 군말 없이 참아준 대가라 생각하시라
그나저나 세월은 정말 지하철만큼이나 빠르게 잘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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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공간
145X112cm
화선지수묵채색
1982년 작
부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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