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손과 꽃을 든 손
김 형 구
오리는 목이 잘려있다. 나는 식칼을 연마봉에 간다. 새벽, 허공을 썰어내는 금속성 마찰음. 그림자가 스테인리스 작업대 위에 어른거린다.
배를 가른다. 연한 아랫배부터 딱딱한 목까지 쫘악! 쇄골이 뚝 끊어진다. 배를 젖히자 퍽 수박 쪼개지는 소리가 난다.
1차 작업을 거쳐 온 뱃속은 비교적 깨끗하다. 등 쪽 좌우로 붙어있는 선홍빛 폐. 그 위로 미처 제거되지 않은 심장이 대추처럼 혈관에 매달려 있다. 위를 비롯해 대장이며 소장, 간, 지라, 콩팥은 제거되고 없다. 가늘고 긴 목에 식도가 납작하게 붙어있고 그 위로 투명한 플라스틱 주름관처럼 기도가 지나가고 있다. 손으로 심장을 떼어낸다. 식도와 기도도 잡아당겨 제거한다. 허파를 들어내자 장갑 낀 손이 붉게 피로 물든다. 몸속이 텅 비어있다.
칼을 바꾼다. 한 뼘쯤 되는 뼈칼은 서슬이 퍼렇다. 칼이 늑골 사이를 파고들자 가슴살이 힘없이 떨어진다. 가슴살을 등 뒤로 접어 잡는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등뼈와 가죽사이를 관통한 칼은 등줄기를 타고 목덜미까지 미끄러져 나간다. 붉은 긴 목이 공중에서 흔들거린다. 목뼈를 잡아당기자 등가죽이 벗겨진다. 엉덩이를 잘라낸다. 뼈와 살은 이제 한 몸이 아니다.
살덩이가 작업대 위에 툭 떨어진다. 발목을 잡고 다리관절에 칼을 대자 정강이뼈와 종아리뼈가 분리된다. 다리뼈에 이어 날개 뼈도 발라낸다. 발골작업은 저녁 무렵까지 이어진다.
나는 매일 오리 백여 수의 배를 가른다. 축사를 지어 생명을 기르고 죽여 팔아온 지도 십여 년.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죽인 생명체들! 산다는 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일까.
퇴근길, 시장에 들른다.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칼놀림을 본다. 짧은 창칼로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내장을 발라내고 회를 뜬다. 명태나 아귀 등 큰 고기 몸통을 자를 때에도 손바닥처럼 생긴 무쇠 칼을 공깃돌 다루듯 한다. 손질이 끝나자 통나무 도마에 칼을 꽂고 정리된 어물을 비닐봉지에 담아내는 모습은 막힘이 없다. 고수다.
전시회를 앞둔 나는 집에 돌아와 피 묻혔던 손을 씻고 그림을 그린다. 온갖 아름다움을 상상하면서. 생선 집 아주머니도 집에 가서 비린내 나는 손을 비누칠해서 닦고 예쁜 손녀를 안아 줄 것이다.
인간은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왼손과 오른 손이 아니라 죽이는 손과 살리는 손. 칼을 든 손과 꽃을 든 손이다.
<에세이피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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