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생각

예술론

칡뫼 2020. 7. 3. 16:24

가수가 그림을 그려 화가 행세를 하더니 그 도가 지나쳐 대작을 하고 문제가 되자 그것도 예술행위라며 법적으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제 허가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좋을까.

이번 일은 현대미술의 난해성으로 돌리기엔 뭔가 찜찜하고 풀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예술이란 뭘까? 예술가는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예술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었고 늘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논리로 사유 되는 건 예술이 품고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에는 예술이 추방의 대상이었던 적도 있었다. 세상 질서를 흐리게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모방성의 용도로 기존 질서, 정치나 종교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하기도 했다. 계몽주의 인문주의 이후에 비로서 진정한 예술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하겠다. 그 결과 예술의 자율성은 그 몫을 스스로 찾게 만들었으며 세상에 더 넓은 사유의 바다를 선물했다. 예술가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존재로 동일성을 거부한다. 개별성 자율성은 늘 기존 질서와 부딪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통 사회에서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뭐든 거세되었다. 세월이 흘러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자본주의가 만났다. 민주, 자본주의라는 질서는 왕정제도와 달리 반대조차도 포용함으로써 더 강력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체제는 완전한가. 신자유주의 물결로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런가. 모든 질서는 동일성을 강요한다. 인간은 상품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다. 그러니 획일화를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에 동화되지 못하거나 배제되고 낙오된 자는 늘 있게 마련이다.

예술가가가 주목할 것은 결국 이들이 아닐까.

 

세상은 승자의 역사였다. 그래서 누구나 승자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질서 속에는 반대로 패배자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패배자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예술은 기존 질서에서 소외된 타자에게 전율하며 그로 그들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아도르노의 미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예술가 또한 기존 체계 속에 있지만 늘 불완전한 질서에 저항하고 그 속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희망의 숨구멍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기존 체제의 승자만을 위해 잘못된 질서에 동화되고 찬미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림을 한 점이라도 더 빨리 만들고 더 많이 팔아서 어찌하겠단 말인가. 자본의 논리다. 결국 작품의 궁극적 목적이 돈이 아니었던가. 돈을 추구하는 예술론에 반대한다. 물론 나름의 논리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사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오늘도 한 점 두 점 오랜 사유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리하느라 애쓰는 작가들에게 돌은 던지지 마시라. 결론을 내리자.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대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장사치일 뿐이다.

 

 

ㅡ르네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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