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을 사용하느냐 아니냐 일 것이다. 동물은 소리로 의사전달은 할 수 있지만 생각을 엮어 차려내는 말은 하지 못한다. 즉 말은 인간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라 할 것이다.
말을 하게 된 인간은 뱉으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말을 저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처음 의사전달은 소리와 함께 하는 손짓 발짓이었겠지만 어느 순간 손에 잡은 막대나 돌조각 따위로 그 어떤 표식을 했을 것이다. 즉 금을 그은 것이다.
그은 금은 시간이 흘러 대상을 그린 이미지로까지 발전했다. 이미지는 다시 간결화되고 일종의 기호가 되었다. 예로 산을 삼각형으로 표시 그것이 모여 산이라는 글자가 되는 형식으로 문자가 탄생되기도 했다. 상형문자다.
한편 긋는 금은 대상을 나누는 경계가 됐는데 금의 안쪽이 '금안'이 되었고 '그만'이란 말이 탄생되었다. '금안에 두다'가 '그만두다'가 된 것이다. 아마도 가축을 방목하다 잡아 울타리, 금안에 넣으면 일을 그만두게 된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런 금을 그어 만든 것이 결국 '말'의 또 다른 모습 그림과 글이 되었다. 말의 저장수단이 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usb요 저장파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최초의 문자행위 금을 긋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긋다에 대한 사유를 한국말 학자 최봉영(묻따풀학당)님의 말씀을 통해 적어본다.
금을 긋다. 그리다. 글. 그림.
그리움. 그림자, 그립다, 그것, 그럼, 그리고, 그런데,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므로 등등이 모두 연결되는 말인데 여기서 공통인 것이 '그'이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일까? 한국말에서 '그'는 그때 그곳에 있었던 그것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지칭할 때 '이것, 저것, 그것'이라 말한다. '이것'과 '저것'은 눈앞에 있는 현재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손안에, 눈앞에 있는 있는 실체가 아니다. 즉 '그것'은 지나간 것이요 또한 오지 않은 모든 것을 말한다. 해서 '그것'은 우리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한국말 학자 최봉영>
즉 그림자, 그리움, 그림, 사실 모두 허상을 지칭하는 말인 것이다. 그림의 떡이란 말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실체가 달고 다니는 그림자 모두 헛것 아닌가!
결국 한국말에서 '그'는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마치 손안에 있는 것처럼 엮어내는 커다란 바탕말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바탕을 둔 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화판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금을 긋는 것이다. 안과 밖을 나누고 이쪽과 저쪽에 색을 칠하는 행위다. 마음을 채우는 일이다. 해서 이 세상을 향한 작가의 꿈, 바람, 그리움을 그리는 행위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눈앞에 드러내는 몸짓이다.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멋진 일 아닌가! 하지만 그 모든 행위는 어느 순간 생겼다 사라지는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다만 해가 뜨고 달이 뜨면 어제와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나는 존재다.
ㆍ
ㆍ
칡뫼 용문 가는 기차에서 적다
ㆍ
덧글: 금을 긋다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에겐 끔찍한 금이 있다. 휴전선이다.
ㆍ

교하에서 162X97cm 화선지수묵채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