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수필

용재아저씨

칡뫼 2013. 12. 3. 12:05

 

 

용재아저씨

 

 

김 형 구

 

내 고향 갈산리가 나의 일터다. 서울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길, 일찌감치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큰길을 벗어나 농로로 접어드니 지게에 잘린 소나무 두어 개를 지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 용재아저씨다. 풀린 것인지 안 맨 것인지 땅에 끌리는 지게 끈이 세상 바쁜 게 없어 보였다. 길을 막고 걸으니 천천히 뒤를 따랐다. 몇 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차 소리를 들었는지 길섶으로 물러섰다.

 

간수하기 좋게 잘라준 까까머리에 누렇게 탄 갈색 피부, 눈 꼬리에 입 꼬리까지 처진 선한 얼굴이다. 듬성듬성 난 짧은 수염은 나이 탓인지 희끗했다. 말이 없어도 입은 헤벌리고 혀를 내민 채 희죽 희죽 웃는다. 나이든 영구랄까.

 

길을 터줬지만 지나가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지게에 진 나무길이를 모르는데다 사람을 좋아해 아무나 보고 "아즈씨, 아즈씨" 한다. 차에 탄 사람이 궁금해 갑자기 몸을 돌려 아는 체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깜짝 놀라 경적 울리는 차를 몇 번 보았던 터였으니까.

 

용재아저씨의 걸음걸이는 방향이 일정치 않다. 갈지자는 기본이고 어떤 때는 길 한가운데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길 지나던 외지인은 일부러 차량의 통행을 막는 것으로 오해하기 일쑤였다. 가끔 화가 난 운전자가 내려서 따지려다 그의 얼굴을 보고는 말없이 그냥 자리를 피하곤 하였다.

 

오늘도 마을 공동묘지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손에는 사과 한 개, 이른 아침부터 상석에 놓인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였다. 앞 산 '삼태기골'로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가곤 했는데, 산자락에 이르니 아이들이 그를 놀리고 있었다. 건빵을 줄 테니 아랫도리를 벗어보라고, 얻어먹는 재미에 희죽 희죽 웃으며 바지를 벗었는데 어른인 그는 사타구니에 털이 나 있었다. 손가락질하고 깔깔거리며 골탕 먹이는 모습에 난 그가 안쓰러워 친구들을 말렸던 기억이 있다. 그는 우리 막내삼촌과 동갑으로 군에 같이 갔지만 혼자 집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할머니는 용재아저씨를 볼 때면 사고로 죽은 막내아들 생각에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궂긴 일로 고향 상갓집을 찾으면 그는 거기에 상주처럼 있었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자못 심각했으며 동네 사람들도 그를 놀리지 않았다. 마을 사방 십 여리 초상집에는 늘 그가 있었다. 동네 어른의 부음을 듣고 문상을 못 오면 우스갯소리로 '용재만도 못한 놈'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 착한 그에게 동네사람들이 일부러 소식을 흘린 탓도 있었으리라.

 

엊그제 추석이었다. 집안 어른들과 성묘를 하는데 마을묘지에 나타난 그는 잔칫날이 따로 없었다. 이 곳 저 곳 무덤마다 사과며 배, 술까지 놓여 있으니 며칠 동안 입이 즐거울 것이었다. 얼굴에 행복이 묻어나 보였다. 막내 삼촌 묘에 예를 갖추고 일어서며 생각을 해 보았다. 삼촌이 살아계셨다면 내년이면 칠순이시다. 그러니 용재아저씨도 이제 칠십 노인이었다, 순진무구한 그도 세월을 거를 수는 없었는지 얼굴에 잔주름이 많았다. 하긴 애, 어른 할 것 없이 반말로 대하니 모두 그의 나이를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실실 웃는 선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성묘를 마치고 앞산을 바라보았다. 산이 아름다운 건 뭐든지 품고 보듬기 때문이 아니던가. 아무리 불편한 몸, 부족해 보이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품어주며 함께 살던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에게는 아마 용재아저씨가 마지막이 아닐까.

 

무덤가는 야생화의 천국이다. 봄에는 미나리아재비가 살랑이고 오뉴월이면 솔나물, 여름에는 마타리, 타래난초, 멍석딸기까지 지천이다. 이제 개솔새가 하늘거리고 억새가 하얗게 피어나는 가을. 카메라를 삼각대에 걸치고 야생화를 담았다. 사진을 찍다가 발아래 있는 돌콩 꼬투리를 까보았다. 콩 알갱이가 고르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쭉정이도 보이고 덜 자란 알갱이도 함께 들어있었다.

 

무덤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언제 와 있었을까. 용재아저씨가 곁에서 웃고 있었다.

 

"아즈씨, 아즈씨 뭐해?"

 

 

<수필과 비평 10월호>

 

 








        용재아저씨  

                               

                                                                                   김 형 구

     내 고향 갈산리가 나의 일터다. 서울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길, 일찌감치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큰길을 벗어나 농로로 접어드니 지게에 잘린 소나무 두어 개를 지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용재아저씨다풀린 것인지 안 맨 것인지 땅에 끌리는 지게 끈이 세상 바쁜 게 없어 보였다. 길을 막고 걸으니 천천히 뒤를 따랐다. 몇 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차 소리를 들었는지 길섶으로 물러섰다.

    간수하기 좋게 잘라준 까까머리에 누렇게 탄 갈색 피부, 눈 꼬리에 입 꼬리까지 처진 선한 얼굴이다. 듬성듬성 난 짧은 수염은 나이 탓인지 희끗했다. 말이 없어도 입은 헤벌리고 혀를 내민 채 희죽 희죽 웃는다. 나이든 영구랄까.

     길을 터줬지만 지나가려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지게에 진 나무길이를 모르는데다 사람을 좋아해 아무나 보고 "아즈씨, 아즈씨" 한다. 차에 탄 사람이 궁금해 갑자기 몸을 돌려 아는 체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깜짝 놀라 경적 울리는 차를 몇 번 보았던 터였으니까.

    용재아저씨의 걸음걸이는 방향이 일정치 않다. 갈지자는 기본이고 어떤 때는 길 한가운데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길 지나던 외지인은 일부러 차량의 통행을 막는 것으로 오해하기 일쑤였다가끔 화가 난 운전자가 내려서 따지려다 그의 얼굴을 보고는 말없이 그냥 자리를 피하곤 하였다.

     오늘도 마을 공동묘지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손에는 사과 한 개, 이른 아침부터 상석에 놓인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였다앞 산 '삼태기골'로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가곤 했는데, 산자락에 이르니 아이들이 그를 놀리고 있었다. 건빵을 줄 테니 아랫도리를 벗어보라고, 얻어먹는 재미에 희죽 희죽 웃으며 바지를 벗었는데 어른인 그는 사타구니에 털이 나 있었다. 손가락질하고 깔깔거리며 골탕 먹이는 모습에 난 그가 안쓰러워 친구들을 말렸던 기억이 있다. 그는 우리 막내삼촌과 동갑으로 군에 같이 갔지만 혼자 집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할머니는 용재아저씨를 볼 때면 사고로 죽은 막내아들 생각에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궂긴 일로 고향 상갓집을 찾으면 그는 거기에 상주처럼 있었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자못 심각했으며 동네 사람들도 그를 놀리지 않았다마을 사방 십 여리 초상집에는 늘 그가 있었다. 동네 어른의 부음을 듣고 문상을 못 오면 우스갯소리로 '용재만도 못한 놈'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 착한 그에게 동네사람들이 일부러 소식을 흘린 탓도 있었으리라

     엊그제 추석이었다. 집안 어른들과 성묘를 하는데 마을묘지에 나타난 그는 잔칫날이 따로 없었다. 이 곳 저 곳 무덤마다 사과며 배, 술까지 놓여 있으니 며칠 동안 입이 즐거울 것이었다. 얼굴에 행복이 묻어나 보였다. 막내 삼촌 묘에 예를 갖추고 일어서며 생각을 해 보았다삼촌이 살아계셨다면 내년이면 칠순이시다. 그러니 용재아저씨도 이제 칠십 노인이었다, 순진무구한 그도 세월을 거를 수는 없었는지 얼굴에 잔주름이 많았다. 하긴 애, 어른 할 것 없이 반말로 대하니 모두 그의 나이를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실실 웃는 선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성묘를 마치고 앞산을 바라보았다. 산이 아름다운 건 뭐든지 품고 보듬기 때문이 아니던가. 아무리 불편한 몸, 부족해 보이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품어주며 함께 살던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에게는 아마 용재아저씨가 마지막이 아닐까.

    무덤가는 야생화의 천국이다. 봄에는 미나리아재비가 살랑이고 오뉴월이면 솔나물, 여름에는 마타리, 타래난초, 멍석딸기까지 지천이다. 이제 개솔새가 하늘거리고 억새가 하얗게 피어나는 가을. 카메라를 삼각대에 걸치고 야생화를 담았다. 사진을 찍다가 발아래 있는 돌콩 꼬투리를 까보았다. 콩 알갱이가 고르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쭉정이도 보이고 덜 자란 알갱이도 함께 들어있었다.

     무덤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언제 와 있었을까용재아저씨가 곁에서 웃고 있었다.

     "아즈씨, 아즈씨  뭐해?"  

     

                                      <수필과 비평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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