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된 수필

짧은 수필?

칡뫼 2014. 1. 25. 17:32

 

            발가락도 닮았을 거다                     김형구

 

       앞집 아주머니 장에 다녀오시는가. 흰 모시적삼에 모시치마, 참 곱다. 어릴 적 보았던 앞집 할머니가 환생했나. 걸음걸이 옷매무새도 똑같다. 하긴 그 어머니 그 딸이니.

       어릴 적 모녀가 대두리 나게 싸울 때면 울고불고 하던 소리가 우리 집 안 마당까지 넘나들었다.

       "난 엄마처럼 안 살 꺼야, 엄마처러문 죽어도 안 살아."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물고 코를 씩씩대며 대들던 아줌마다.

       우린 모르는 새, 아비 어미를 닮는다. 그래서 일까. 요즘 사래가 들면 내뱉는 내 기침소리, 할아버지 사랑채에서 들리던 그 기침소리다. 아버지하고도 똑같다. 기침소리 뿐이랴 아마 발가락도 닮았을 거다.

                

 

 

 

          말 없는 대화                                                                                                           

     

       엊그제였나요. 지하철 안에서 아이들이 전화로 주고받는 대화를 보았지요. 얼마나 조용히 시끄럽던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소리 없는 대화였죠. 문자로 주고받으니.

       태풍이 지나간 오늘, 이른 아침부터 밭두렁에 계신 아버님을 보았습니다. 한참을 서 계셨는데 분명히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밭고랑의 야채며, 고추 그리고 둔덕의 들풀과 나무하고도.

       어려서 부터 보아온 모습, 이른 아침 밭에 논에 나가신 이유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농부는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대화 한다는 것을.

 

                    

 

           

 

             인력시장                               

               

           출근길, 일터에 가려면 마곡사거리라는 곳을 지나갑니다. 그곳에는 새벽부터 인력시장이 형성되지요. 한국인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필리핀 등 먼 곳에서 온 외국인도 있습니다. 차가 지날 때 마다 눈을 모으고 쳐다봅니다. 자신의 힘을 사러 오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요. 그 숫자가 전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힘이 남아 겉돕니다. 인력시장도 불황입니다. 팔리지 않은 상품은 9시 까지 서성이다 커피 한 잔을 쓴 사약처럼 마시고 사라질 겁니다. 오늘 따라 바람이 차네.


   

          

 

          

      

        사람은 본래 슬픈 존재인가

                                                                                                                                                     

        오랜만에 아침부터 해가 났네요. 앞산 꾀꼬리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립니다. 어제 오후엔 농장 곁 참나무에서 매미가 울었습니다. 올 해 처음 듣는 울음소리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귀뚜라미가 울겠지요. 겨울엔 바람에 전깃줄이 운다하고.

        새벽 닭 우는 소리. 풀벌레 소리. 늑대 울음. 부엉이, 개구리, 억새, 문풍지 우는 소리까지. 그러고 보니 소리란 소린 다 운다고 하네요.  사람은 본래 슬픈 존재인가 봅니다.

 

 

 

        

      

 

         아, 살아있음에 행복합니다

 

      이른 아침 농장에 출근했습니다. 조용한 시간 풀벌레가 가는 실처럼 웁니다. 앞산 꾀꼬리가 적막을 깨뜨리네요. 아침 공기를 음미합니다. 달콤하네요. 심호흡을 합니다. 햇살이 퍼져오네요. 처마의 거미줄이 은사처럼 반짝입니다. 직박구리도 시끄러워지고 까치도 까악 깍 아침인사 합니다.  멀리 산허리 안개가 오늘따라 더욱 예쁘네요. 껴안은 연인의 하얀 팔처럼. 
       아, 살아있음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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