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 칡뫼
"꺄-악"
비명소리 딸아이다
"왜그래"
"벌레"
민달팽이 한마리가 목욕탕 타일벽에 붙어 있다
물을 끼얹고 하수구로 떠내려 보냈다
안 떨어지려는 몸짓
누런 배를 들어낸 채 나뒹그러져 떠내려간다
다음날도 같은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놀랄까봐 내가 먼저 발견했을 뿐
정지라는 커다란 동작
분을 나누고 초를 나누고 또 나눈 몸짓으로
여기까지 살아왔다
버림받은자들의 더미 하수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하나로
아무리봐도 쓸모없는 움직임
미세한 떨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외된자의 동작은 그 얼마나 빈약한가
패배자의 몸짓은 그 얼마나 구차한가
무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버려진 자들의 행동
하지만 그들은 끝없이 움직인다
살아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명령을 수행하듯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난 찬물을 끼얹었다
비누향내 진동하는 이곳은 너와는 안 어울린다는 핑계로
난 거대한 폭력이었다
며칠 뒤 안보이던 민달팽이가 또 나타났다
하나를 더 데리고
정지라는 큰 동작으로 공간이동까지 하면서
난 살아야하니까
난 살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