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민달팽이 - 자작시

칡뫼 2009. 10. 21. 13:53

 민달팽이             /     칡뫼 

 

"꺄-악"

비명소리  딸아이다

"왜그래"    

"벌레"

민달팽이 한마리가 목욕탕 타일벽에 붙어 있다

물을 끼얹고 하수구로 떠내려 보냈다

안 떨어지려는 몸짓

누런 배를 들어낸 채 나뒹그러져 떠내려간다

 

다음날도 같은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놀랄까봐 내가 먼저 발견했을 뿐

 

정지라는 커다란 동작 

분을 나누고 초를 나누고 또 나눈 몸짓으로

여기까지 살아왔다

버림받은자들의 더미 하수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하나로

 

아무리봐도 쓸모없는 움직임

미세한 떨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외된자의  동작은 그 얼마나 빈약한가

패배자의 몸짓은 그 얼마나 구차한가

무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버려진 자들의 행동

하지만 그들은 끝없이 움직인다

살아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명령을 수행하듯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난 찬물을 끼얹었다

비누향내 진동하는 이곳은 너와는 안 어울린다는 핑계로

난 거대한 폭력이었다

 

며칠 뒤 안보이던 민달팽이가 또 나타났다

하나를 더 데리고

정지라는 큰 동작으로 공간이동까지 하면서

난 살아야하니까

난 살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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