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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고향마을에선 겨울에 토끼 사냥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호기심에 따라다니곤 했는데 남정네들에겐 일종의 동네 행사였다. 재미로 잡기도 했지만 먹는 것이 귀한 시절이라 육류 섭취의 기회이기도 했다. 주로 눈이 내리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가 굴을 뒤지거나 토끼를 발견하면 끝없이 쫓아가 잡기도 했는데 어린 나는 형들이 눈 밭을 뛸 때 쫓아가지를 못했다. 그 뒤 올무로 잡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동네에 순택이 형이라고 있었는데 사냥을 참 잘했다. 여름이면 물고기 겨울이면 토끼나 고라니를 잡아내는데 선수였다.
눈이 안 와도 잘 잡았는데 그 이유는 올무였다. 사냥방법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설치 방법에 비결이 있었다.
싸리나무나 진달래 등 작은 나무의 잘린 부분을 보고 토끼들의 먹이 서식지를 알아내고 토끼 다니는 길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나무 잔가지를 그물처럼 삼각형 모습으로 자연스레 늘어놔 꼭짓점 부근에 설치한 올무로 잡는 방법이다. 결국 토끼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잡는 사냥인 것이다.
요즘이야 야생동물 사냥이 금지되어 있지만 당시는 흔한 풍경이었다.
뜬금없이 왜 사냥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요즘 언론의 행태가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여론몰이를 보면 토끼 사냥이 떠오르는 것이다. 주로 제목 장사로 시작하여
목적과 의도를 정해 놓고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제목은 마치 사냥터에 늘어놓은 잔가지나 마찬가지다. 제목에 현혹되어 읽다 보면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으로 독자는 유도한 올무에 걸리기 십상이다.
이런 언론을 황색언론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레기와 그 집단으로 불리고 있다.
이들의 행태를 보면 공동체의 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기사를 편집한다. 우리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풍기는 맛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문장은 틀린 말이 아닐지언정 방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점을 잘 활용한다. 예를 들어보자 코로나 백신 기사다.
'일본 이르면 내년 3월 코로나 백신 접종'이란 제목에는 우리는 언제 맞힐 건 데가 숨어 있고 '한국 빨라야 2-3월에 코로나 백신 접종'이란 기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 늦게 접종하는 나라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같은 언론사 기사인데 결국 기사대로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시기에 접종이 이루어지는 거다., 어쩜 기사대로라면 한국이 더 빠르다 하지만 한국은 늦고 다른 나라는 모두 빠르다는 느낌을 심는다. 지금 언론이 이런 식인 것이다. 이는 가벼운 예에 불과하다. 기사로 사람을 죽인 예는 부지기수다.
바쁜 현대인은 기사 제목만 보는 경우도 많다. 의도된 기사는 여론 지형을 바꾼다. 이제 기사도 의심하고 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 바라보는 창이 언론이라면 창문을 닫고 살 수는 없다. 더러운 창문이라면 닦고 보는 습관이라도 길러야겠다.
이런 말이 있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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