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18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선생의 '나그네'란 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려있어 그 서정적 분위기에 흠뻑 젖었었다. 시는 일제강점기 시절 작품이라 할 말이 많지만 구름에 달 가듯이란 표현에 심취했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길은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미끄러지듯 걸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걸어야 길다운 길이 되고 걷다 보면 힘들고 지치게 마련이다. 길은 방향이다. 방향을 정해 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 끝없이 나타난다. 어렵게 헤쳐나가야 하는 숙제가 곧 길인 것이다. 길은 트인 공간이 아니라 끝없는 막힘이요 연결이지만 한편 단절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미로..

황무지 연작 2024.09.27

칼의 나라

인간의 역사는 힘의 역사다. 힘 있는 자의 서사다. 영웅은 힘을 가진 자였고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칼이 들려 있었다. 어느 순간 칼은 복제되어 여러 곳에 씨를 뿌렸다. 칼이 여기저기 싹처럼 솟구쳤다. 하지만 칼은 생명을 지키거나 베어낼 뿐 생명을 키우지는 못한다. 현재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그런면에서 모든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일 뿐이다. 현재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는 칼의 벌판에 서 있다. ㆍ ㆍ 황무지, 우상의 벌판 칡뫼김구 개인전 2024년 11월 13일~11월 26일까지 후원 서울문화재단 인사동 나무아트 ㆍ 칼의 나라 162.2 ×130.3cm 한지 먹 채색 칡뫼 김구 ㆍ

황무지 연작 2024.09.27

서탑書塔의 나라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을 물었던 본능 외에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익힌다. 인간의 말은 소통이면서 명령이다. 우리는 말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발명했다. 금석문을 비롯 수많은 책에 저장된 인간의 말은 세상을 유지하는 질서가 되었다. 신도 그 속에 있었고 인간도 그 속에 살았다. 우리는 문자가 가르치는 것을 기억했고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해서 보이지 않는 천국도 보았고 지옥도 상상해 냈다. 나약한 인간은 책이 지시하는 대로 살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상스레 그러할수록 세상은 무지막지해졌다. 1 책에서 나를 찾고자 했으나 어느 순간 책은 우리를 버리고 있다. 책을 도구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챙긴 자들이 세상을 황무지로 만들고 있다. 전쟁은 일상이고 인간은 자본의 노예가 된..

황무지 연작 2024.09.26

ㅡㅡ가을 전시를 앞두고

거의 2년에 한 번 하다시피 한 전시가 다시 이번 늦가을(나무아트 11월 13일부터)에 열린다. 나름 책도 읽어보고 이런저런 강의도 듣고 미술사도 들춰보고 그림 또한 셀 수 없이 봐왔어도 아직 그림이 뭔지 모르는 1인이다. 해서 전시는 늘 두렵다. 하지만 전시로 인해 또 다른 사유로 다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에 힘을 들여 치른다. 어린 시절 담벼락이나 땅바닥에 낙서하다 학교 입학 후 우리 집 소를 그렸던 기억이 있다. 크기도 컸지만 그 모습이 늠름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집 누구나 아끼고 사랑했던 대상이기에 그렸던 것 같다. 서울로 전학 와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따라 그렸다. 왜 미美술인가. 그림은 무조건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더 머리가 커지니..

황무지 연작 2024.09.20

한가위 아침

몸이 굼뜨고 생각도 날렵하지 못하다. 새벽에 내려와 차례 모시고 조상님들 산소 찾아 예를 갖추고 마지막으로 김포 유공자묘역을 갖춘 '무지개 뜨는 언덕'에 모신 아버님을 찾아뵈었다. 이로서 예전과 다르게 나의 한가위 행사는 쉽게 끝났다. 다시 작업실에 올라와 믹스 커피 한잔을 마신다. 이제 작업모드로 정진이다. 빨간 글씨 연휴가 좋은 이유는 알바도 스톱이고 오로지 그림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이 전과 다르게 무겁다. 스프링처럼 파팍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작품에 깊이가 더해지는 것도 아니다. 파드닥 날아다니는 새처럼 번갯불처럼 행동하던 때가 그립다. 뭐든 맘과 같이 행동이 따라주던 청춘은 어디에 갔는가! 이제 맘도 몸도 각자 살림이다. 늙는다는 건 맘이 몸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ㆍ..

카테고리 없음 2024.09.17

옛그림

꼭 이맘때면 떠오르는 옛 그림들이 있다. 밤골목길 그림이다. 나라가 망해 나도 망했다. 늘 삶에 지쳐 저리 집을 오고 가던 시기다. 10년이 지나고 다시 몇 년, 꺾였던 붓을 다시 잡고 그림을 시작하던 시기다. 당장 보이는 경치부터 시작해야 했다. 골목이었다. 그것도 늦은 퇴근 새벽 출근이니 밤이었다. 내가 그림이고 그림 속 인물이 나였다. 지나 보니 다시 붓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힘이 되었으니.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는 세월은 다 놓치고 이제 다시 추석 앞에 섰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만나는 한가위는 갈수록 슬프구나. ㆍ ㆍ 칡뫼 옛 그림을 보고 과거에 잠시 젖다 ㆍ 나라가 어지러워도 한가위는 즐겁고 건강하게 .

카테고리 없음 2024.09.15

부나비

ㆍ 불빛을 좋아하는 나방은 빛에 취해 남포등이나 모닥불에 달려든다. 이름하여 불나방이다. 부나비라고도 불리는데 아무튼 불에 뛰어든 나방의 최후는 비참하다. 타 죽거나 날개가 그슬리는가 하면 더듬이가 사라지기도 한다. 배움이 많고 똑똑하다던 사람들 중에는 부나비처럼 권력 주변을 서성이는 이들이 참 많다. 출세라는 말을 귀에 달고 달려온 그들이다. 나름 학연 지연 등 사방에 안테나가 있는 데다 권력이 무얼 원하는지 눈치도 빨라 한자리하며 나름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이번에 몸담은 권력은 시작부터 엉망진창이더니 가뜩이나 낮았던 인기마저 까먹고 있다. 국가 정체성까지 흔들었으니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몰락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곧 닥쳐올 자..

카테고리 없음 2024.09.13